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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종, 군밤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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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 * 조선-청 관계 1868년, 조청수호조규를 체결하여 기존의 조공책봉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를 자주국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대신 조선은 청을 같은 자주국이되 '대국'으로 존중하기로 했다. 청은 천진 교안 때 편을 들어준 조선에게 길림 일대를 경영하는 것을 허용했고, 조선은 그 이후로도 청과 열강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나서서 적절히 중재하는 등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신사 계층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조선을 배우자는 논의도 일어나고 있다. [[광서제]]가 조선에 지극히 우호적이다. 북경 외교가에서 천자가 조선의 말은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홍장]] 등 일부 대신들은 소국이라 무시하고 있었던 조선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경계하고 있으며 청이 다시 천자국에 걸맞은 힘을 되찾으면 기존의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으나, 이홍장조차 조선이 열강보다야 믿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본작에서는 2차 아편전쟁 이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편전쟁만으로도 서양 국가들 이미지 박살나기에는 충분하다.(...)] 심지어 조선군 30만이 북양군을 제압하기 위하여 압록강을 넘었을 때도 자의원 의원들은 조선이 열강처럼 이권을 갈취하지 않으리라 믿었고 실제로 조선은 출병에 들어간 비용과 죽은 장병들의 유가족들에게 돌아갈 배상금 정도만 받았다. 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대한 조건 때문에 이후로도 청은 조선을 적성국으로 여기지 않으며, 조선에게 군축을 미뤄 달라고 요청하거나 조선이 신무기를 시연하는데 경계보다 호기심을 갖고 보는 등 양국 관계는 매우 양호하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북경 정계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조선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외교와 내정의 핵심사항으로 여기고 있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깊으면서 세계에 목소리 낼 수 있는 바탕인 아주연합의 핵심 국가이고, 첨단 기술 부문에서 앞서가는 위치에 있으며, 외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조선-동삼성 관계 천진 교안이 터졌을 때 조선이 청나라 편에 선 것을 높이 평가한 서태후가 봉금령을 완화하면서 교류가 시작됐다. 뜻있는 만주족 젊은이들이 국문을 숭상하는 조선을 보고 자극을 받아 만주어를 정비하여 그 말로 동서고금의 명저들을 옮기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저들 조상 이야기가 많이 있으리라 여기고서 조선을 방문하는 학자들도 있다. 근래에는 몇몇 외골수 젊은이들이 만주의 본류는 [[숙신]]이니 조선과 한 뿌리라 주장하기도 한다. * 조선-일본 관계 1867년, 수신사를 파견하여 [[도쿠가와 막부]]와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하였다. 그 후 초대 주조선일본공사로 [[카츠 카이슈]]가 부임했다. 대체로 우호적이다. 양국의 군사력이 평행을 이루고 있고 의회에서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는 동국 세력의 좌장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막부와 조선의 우호 관계를 자신의 치적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정한론]]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1880년의 조일동맹 체결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먼저 개화하였는데 조선에 앞질러져 버린 현황에 대한 질투도 있고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에서 조일이 동맹하고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도 있어, 결국 조일동맹을 파기하고 각각 조러, 영일동맹을 체결하되 직접적인 충돌은 없도록 합의했다. 그리고 조선은 영국에 '이러이러해서 일본이 우리와 동맹을 해소하고 영국과 동맹을 맺고자 하니 잘 부탁한다'는 문서를 보냈고, 동맹국은커녕 중립국이 돌아서려는 기미만 보여도 불바다를 만들던 영국은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묘사 하나 없이 참으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소개해 주는 조선에 대해 '또 이상한 짓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후 상술한 조청전쟁 때 조선의 군사력이 일본에겐 상식 밖의 수준임을 알게 되어서 [[공한증|공조증]]과 같은 공포에 떨게 된다. 무엇보다 서양 외교가에서는 조청전쟁을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싸우기 전에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관대한 협정을 제안했던 보오전쟁과 같은 함의로 보고 있는데, 조선이 청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후방을 안정시켰으면 최종 타겟은 바로 어디겠는가? 안 그래도 독도에서 사상자까지 나오는 해상대치를 한 사례도 있으니. 이런 호들갑도 추가되어서 조선 입장에선 정말로 친선 관계를 유지하는 말을 했는데도 '저렇게 말해도 조선이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독도 분쟁 이후로는 직접적으로 무력대치를 하지 않은 데다 영-불-러 삼국협상이 결성되며 동맹의 동맹 관계가 되기도 했고, 아주대회 등 아시아 국가 간의 교류도 늘어나 드레드노트급 함선을 조청일 공동발주로 주문할 정도로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다. * 조선-류큐 관계 1872년에 귀남이 몸소 일본의 류큐 병합 시도를 저지하여 매우 우호적이다. 류큐 왕국이 청에도 보내지 않은 공사를 조선에 파견할 정도이며, 청은 명목상 상국이고 조선이 실질적인 상국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조선-베트남 관계 친구의 친구 정도의 관계다. [[양헌수]]를 공사로 파견하였다. 아직 국제법도 제대로 모르는 월남의 관리들을 가르치고 있다. * 조선-연해주 관계 경제가 완전히 조선에 종속되어 있다. 조선에서 이를 빌미로 갑질한 적은 없지만, 연해주 지주들은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처지다. 일부 고약한 조선인들은 이곳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니라 연해도 해삼위도호부라는 농을 치기도 한다. * 조선-시암 관계 1903년 기준으로 조선국 국제를 본떠 군민공치 이룩하자고 하였다가 [[라마 5세]]에게 밉보인 쁘릿사당이 '''13년째''' 공사로 부임 중이다. 본래 라마 5세는 오랫동안 불교를 탄압하였던 조선과 통교할 생각이 없었지만, 발칸 반도에서 성능이 입증된 조선제 무기를 좀 더 헐하게 들여오기 위해 생각을 바꾸어 안면을 텄다. 그러다가 베네수엘라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영국 정계의 논란이 어떤 식으로든 시암 근방까지 여파가 닿으리라는 결론이 나오자 아시아에서 의지할 곳을 얻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왈라야 알롱꼰 옹주를 경양대군에게 시집보내 전주 이씨와 짜끄리 왕조가 사돈지간이 됐다. * 조선-필리핀 관계 스페인 식민지 시절 카티푸난이 아주대회 참가 의사를 밝힌 것을 계기로 인연이 생겼다. 필리핀 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호세 리잘의 부탁을 받고 미국을 끌어들여 신생정부의 내부 갈등을 무마시켰다. * 조선-하와이 관계 흥선대원군의 회갑연 때 아시아 순방 중이던 칼라카우아 국왕이 방문한 것을 계기로 아직 상호 공사 파견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조선이 황란으로 고생할 때 국왕이 내탕을 털어 지원은 해주었다. 그리고 하와이도 아시아라며 조선에서 준비하고 있는 아주대회에 사람을 파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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